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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Ou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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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온미 작성일25-05-06 20:44 조회7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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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Out은 동성애자가 동성애자 임을 밝힐 떼 주로 사용하는 말로 알고 있다. 나는 동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 글도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자유게시판에 글을 마지막에 올린 때가 2021년 2월 25일이니 4년이 훨씬 지났다.

 

새삼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정부지원사업을 신청하는데 자사몰 항목 때문이다. 자사몰 주소를 명기해야 하는데 자사몰이 있어도 4년간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으니 자사몰이 있어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양심이 허락하지를 않았지만 일단 자사몰 주소를 명기하고 부랴부랴 자사몰을 때빼고 광내고 있는 중이다. 

자사몰에 그동안 업로드 못 시킨 상품들도 업로드 시키려고 하니 기존 메뉴로는 커버가 안된다. 나 혼자 힘으로는 수정 못하고 어쩌다가 연락하는 웹전문가에게  염치불구하고 수정 부탁하고 연휴 마지막인 금일 대면 미팅까지 요청하였다. 인천 송도에서 서울 창동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투썸플레이스에서 미팅을 잘 마무리하였다. 

 

웹 수정은 웹전문가가 해주지만 게시판 내용까지는 해줄 수 없다.

 

4년 간의 공백을 메울  글을 써야 하는데 그냥 어디 다녀왔다는 글은 나도 싫다. 다들 빠쁜 세상에 뻔한 글로 4년만의 무대를 장식할 수는 없다.

 

글이 재미있든 없든 또는 공감을 불러올지 말지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 내 이야기를 써보자. 창업 이야기를 중심으로.

1995년 1월 P제철에서 P건설 창업멤버로 해외조달팀장으로 전직하였다. P건설에서 2012년 정년 퇴직까지 30년간 구매부서에서 종사하였다. P건설 17년은 부서장으로 봉직하면서 여러 구매부서장 직을 두루 거치면서 그중 자재 그룹장 3번, 설비구매 그룹장 3번 역임하고 글로벌소싱그룹장으로 정년 퇴직하였다.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데 구매부서 경력은 별로 도움이 되어 주지를 못했다. 

 

회사의 배려로 회사가 관련한 민자고속도로건설에 경영관리본부장으로 3년 간 더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 때 제 2의 인생에 고민해야 했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열심히 일해온 나에게 이 정도 일은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남들처럼 나에게도 찾아왔다. 직장이란 그릇에 직원이란 물은 새로이 들어오고 넘친 물은 다른 그릇의 물을 밀쳐내고 그 그릇에 있던 물은 또 다른 그릇의 물을 밀쳐내며 언젠가는 그릇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 있게 마련이다. 상무를 지냈던 자가 내 자리로 왔다. 정년 퇴직 시 이사보였던 나도 더 좋은 자리를 원했는데 이제는 갈 자리가 없어 상무가 이런 자리로 오게 된 것이다.   

1년은 남들처럼 잘 놀았다. 1년이 지날 즈음 커다란 검은 무엇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다급해졌다. 예전 재직 시 관련 있던 업체 영업 상무라도 해볼까 고민했다. 고민만 하다 말았다. 뻔한 이유다. 영업 상무란 자리는 결국 예전 부하에게 부탁하는 일을 해야 한다. 또는 모르는 자에게 부탁해야 한다. 쉽지 않다. 쉬운 일이 있을까 마는 일단 접어두자. 

 

나의 취미는 음주가무와 솔로비박이다. 취미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다소 어리둥절해 한다. 2개의 취미 성격이 완전 다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자가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 하고 있다. 신부가 묻는다 "왜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까." 답 "고해성사 때 할 말이 필요해서요" 
신부가 또 묻는 다 "그럼 고해성사는 왜 하시죠."  답 "죄를 지었으니까요"

 

질문 "왜 산에 가시죠." 답 "음주가무에 찌든 때를 빼기 위해"  질문 "왜 음주가무를 즐기시죠" 답 "보다 보람 있는 비박 산행을 위해" 

 

웃자고 쓴 글이다. 아재 개그라고 안 웃어도 괜찮다.

 

사실 지리산 종주 시 쉴 때마다 느끼는 것은 거의 같다. 아무 생각 없다. 젖은 땀을 닦아내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무념무상이다. 이곳에서 돈을 생각하거나 승진을 생각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  . 

 

취미인 솔로비박을 하게 된 것은 딸아이 때문이다.

 

결혼 초에는 휴가 때 호수 낚시를 즐겼다. 휴가 때면 안사람과 딸아이랑 소양호, 파로호 ,충주댐 등으로 피서 겸 낚시를 다녔다.. 딸아이가 중핫생 되고 나서는 안사람이 딸아이 챙겨주느라 휴가가 없어졌다. 나 혼자 좋은 곳은 갈 수는 없고 힘든 지리산 종주를 헀다. 배낭 무게가 여름에도 20kg 이상이고 .추석년휴 시에는 25kg이 넘엇다.
 

딸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안사람과 가끔 비박을 즐겼다. 굴업도, 선자령, 영남알프스 등 당시 비박의 3대 성지라고 불렸던 곳이다.

 

문제는 화장실이다. 혼자 다닐 때는 크게 불편하지 안 했는데 안사람에게는 무척 큰 문제다.